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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내 삶의 지도 본문
첫 기억
어렸을 적 첫 기억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할아버지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부터 5살 막내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할머니 댁에서 자라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세상 전부일 것처럼 자라오다 둘째 동생이 생기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어른들이 말했었다.
말이 많던 내가 말이 줄고 시셈을 많이 하더라고 하셨다.
더 확 변한건 막내가 태어나서였던 것 같다.
내 두번째로 가장 큰 기억은 5살에 누군가의 손을 잡고 막내가 태어나길 산부인과에서 기다리던 기억이었다.
그 때부턴 동생들의 삶에 조역자의 역할을 담은 게 내 삶이였던 것 같다.
할머니 댁을 떠나며 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보며 지냈던 기억이 생각난다.
어딜가든 둘을 데리고 놀러다녔으며 초등학생 때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던 동생을 데리러 다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의 강요가 있어서 그랬냐거나 너의 삶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일것이다.
부모님은 정말 개방형이셨고 골고루 사랑을 주셨으며 그 안에서 나만의 삶도 살았다.
공부를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했기에 그만큼 지원도 해주셨고 공부도 잘했던 편이였다.
하지만 그냥 나는
동생들을 책임져야 할 것 같았다.
첫째로서의 삶
친구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면
" 동생말고 너 생각 좀 해 " 였다.
뭔가를 하면 '어 둘째가 좋아할 것 같다', 여행을 가면 '막내가 좋아할 것 같다'
이 말을 내가 입에 달고 산다고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 난 동생들을 너무 생각하는 구나 싶으면서도 가족의 이 역할에 갇혀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라면서 가진 내가 죽을 때까지 가져야하는 역할이 날 짓누르는 구나 싶었다.
첫째여서 싫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첫째기에 그만큼 걱정을 받고 사랑을 받지만 그만큼 내가 얻는 기대와 책임감이 힘들뿐이다.
투정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투정이겠지만
난 그 책임감이 내 삶 속에서 너무나도 무거웠다.
리더
학교에서 역할을 자주 맡고 고등학교 때 반장도 하면서
친구들은 나에게 리더십이 있다고 자주 말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건 리더십이라기보단 책임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리더십과 책임감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물론 리더가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하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니 리더를 하는게 맞다고 한다면 글쎄..
리더가 되려면 책임감이 아닌 멤버를 이끌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었다.
학교, 스터디 등에서 리더를 맡다보니 배운 점이 정말 많았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 사람의 말을 듣는 방법, 대화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걸 얻는 방법과 같이
사람을 배울 수 있었다.
동생들과의 관계는 당연히 평등하지만 상하관계일 수 밖에 없는, 무언가를 하면 나만 바라보던 상황과는 달리
리더를 맡으면 나눌 수 있다는 게 정말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나도 배울 수 있고 이야기를 통해 해결이 된다는 점이 내 생각을 넓혔다.
서울 자취
내 성격과 마인드, 생각 모든 걸 바꾼 건 바로
대학교를 위해 서울로 자취를 떠났던 덕분이였다.
고등하교 3학년 19살, 대학이 집과 가까운 부산과 먼 서울 두 곳에서 붙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지~ 하고 말했을 때 정말 난 많은 고민을 했다.
한번도 떨어져 산 적 없이 항상 시끄러운 이 집을 떠나 혼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부터
내가 서울에 갈 능력이 되나? 싶은 고민도 있었다.
지방에 살던 내게 서울은 능력있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결정하게 된 건 친구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 난 니가 뭘하던 대단하고 멋지고 최고야 그래서 이 좁은 곳이 아니라 서울가서 너의 꿈을 펼쳤으면 좋겠어 "
날 응원해주는 한마디는 내 삶을 바꿨다.
서울에 와서는 모르는 것 뿐이였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기에 더욱 혼자가 되었음을 빠르게 느꼈다.
5명에서 1명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외로움과 어려움뿐이였고 난 우물안 개구리였을 뿐이란 걸 알게 해주었다.
외로워서 더 무언가를 많이 시도했던 것 같다.
동아리에도 4개씩 들어가고 공부를 하고 알바를 하며 쉬는 날 없이 일과 공부, 회의를 했다.
그만큼 배운 것도 많지만 동시에 번아웃이 크게 왔다.
코로나와 겹친 번아웃은 생각보다 더 삶을 비관적으로 만들었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본가로 장기간 내려오게 되었고 그 때 느꼈다.
내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변화, 발전
예전의 나는 그저 밝고 혼자만의 부담감을 느끼기만 하고 공부도 즐길만큼만 하고 길은 부산까지 정도만 알고
그저 해맑은 우물안의 개구리였다.
내려와서 느낀 나는 상황을 침착하게 볼 줄 알게 되고 남을 생각해 말을 정리해 할 줄 알게 되었으며
세상을 넓게 보게 되었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더 배우고 변화해야겠지만 난 예전과는 달리 변화하였음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변화를 느낀게 되니 난 나를 더욱 다듬고 싶어졌고 그만큼 더욱 발전하고 싶어졌다.
단순히 졸업하고 취업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득했던 내가
iOS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졌고 아무것도 모르고 머리를 박으며 졸업 프로젝트를 swift로 하게 되었으며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팀원들간 갈등을 겪으며 사람에 대해 새로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통해 iOS로 진로를 결정해야겠구나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이 되면서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간도 가졌지만
지금은 iOS에 대한 열망이 더 커져 부트캠프와 스터디들을 통해 공부를 하고 있다.
난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은 도전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공부를 하기만 한다고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는 지금,
나는 나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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